[브레히트 Brecht] 그리고 그 군바리 마누라는 무얼 받았지? Und was bekam des Soldaten Weib?


Und was bekam des Soldaten Weib

 

Und was bekam des Soldaten Weib

Aus der alten Hauptstadt Prag?

Aus Prag bekam sie die Stöckelschuh

Einen Gruß und dazu die Stöckelschuh

Das bekam sie aus der Stadt Prag.


Und was bekam des Soldaten Weib

Aus Warschau am Weichselstrand?

Aus Warschau bekam sie das leinene Hemd

So bunt und so fremd, wie ein polnisches Hemd!

Das bekam sie vom Weichselstrand.


Und was bekam des Soldaten Weib

Aus Oslo über den Sund?

Aus Oslo bekam sie das Kräglein aus Pelz

Hoffentlich gefällt’s, das Kräglein aus Pelz!

Das bekam sie aus Oslo am Sund.


Und was bekam des Soldaten Weib

Aus dem reichen Rotterdam?

Aus Rotterdam bekam sie den Hut

Und er steht ihr gut, der holländische Hut

Das bekam sie aus Rotterdam.


Und was bekam des Soldaten Weib

Aus Brüssel im belgischen Land?

Aus Brüssel bekam sie die seltenen Spitzen

Ach das zu besitzen, so selten Spitzen!

Das bekam sie aus belgischen Land.


Und was bekam des Soldaten Weib

Aus der Lichterstadt Paris?

Aus Paris bekam sie das seidene Kleid

Zu der Nachbarin Neid das seidene Kleid

Das bekam sie aus Paris.


Und was bekam des Soldaten Weib

Aus dem weiten Rußland?

Aus Rußland bekam sie den Witwenschleier

Zu der Totenfeier den Witwenschleier

Das bekam sie aus Rußland.



Text: Bertolt Brecht (1898-1956)

Vertonung: Hanns Eisler (1898-1962), aus Cabarett-Song




그리고 그 군바리 마누라는 무얼 받았지?


그리고 그 군바리 마누라는 무얼 받았지?
그 오래된 수도 프라하로부터 말이야.
프라하에서 그 여자 하이힐을 받았지.
안부 인사와 더불어 하이힐을 받았지.
그게 그녀가 프라하에서 얻은 것이래.


그리고 그 군바리 부인은 무얼 받았지?
벚나무 해안가의 바르샤바로부터 말이야
바르샤바에서 그 여자 삼베 웃옷을 받았지
폴란드 셔츠처럼 색색 튀는 것이었대
그게 그녀가 벚나무 해안에서 받은 거라네


그리고 그 군바리 부인은 무얼 받았지?
해협 너머의 오슬로로부터 말이야
오슬로에서 그 여자 모피 칼라를 받았지
마음에 들어야 할텐데, 그 모피 칼라 말이야
그게 그녀가 해협 너머 오슬로에서 받은 것이래


그리고 그 군바리 부인은 무얼 받았지?
부자동네 로테르담으로부터 말이야
로테르담에서 그 여자 모자를 받았지
잘 어울리는데, 네덜란드 모자였대
그게 그녀가 로테르담에서 얻은 것이래


그리고 그 군바리 부인은 무얼 받았지?
벨기에 땅에 있는 브뤼셀로부터 말이야
브뤼셀에서 그 여자 희귀한 레이스를 받았지
아, 한번 가지기도 어렵다는, 그리 희귀한 레이스였대
그게 그녀가 벨기에 땅에서 받은 것이래


그리고 그 군바리 부인은 무얼 받았지?
빛의 도시 파리로부터 말이야
파리에서 그 여자 비단 원피스를 받았지
이웃집 여자가 샘낼 만한 비단 원피스였대
그걸 그녀는 파리로부터 받았지


그리고 그 군바리 부인은 무얼 받았지?
저 넓은 러시아로부터 말이야
러시아에서 그 여자 과부용 베일을 받았지
장례식 때 쓰라고 과부용 면박을 받았지
그게 그녀가 러시아에서 받은 거라네*


시: 베르톨트 브레히트

곡: 한스 아이슬러, 카바레 송 중에서

by 리트구구 | 2008/04/22 21:21 | 시와 두통 | 트랙백 | 덧글(3)

[뮐러 Müller] 보리수 Der Lindenbaum

Der Lindenbaum


Am Brunnen vor dem Tore
Da steht ein Lindenbaum;
Ich traumt in seinem Schatten
So manchen sußen Traum.

Ich schnitt in seine Rinde
So manches liebe Wort;
Es zog in Freud' und Leide
Zu ihm mich immer fort.

Ich mußt' auch heute wandern
Vorbei in tiefer Nacht,
Da hab' ich noch im Dunkel
Die Augen zugemacht.

Und seine Zweige rauschten,
Als riefen sie mir zu:
Komm her zu mir, Geselle,
Hier find'st du deine Ruh'!

Die kalten Winde bliesen
Mir grad ins Angesicht;
Der Hut flog mir vom Kopfe,
Ich wendete mich nicht.

Nun bin ich manche Stunde
Entfernt von jenem Ort,
Und immer hor' ich's rauschen:
Du fandest Ruhe dort!


Text: Wilhelm Müller (1794-1827)

Vertonung:
Konrad Kreutzer (1780-1849)
Franz Schubert (1797-1828), D 911 "Winterreise" Nr.5, 1827
Friedrich Silcher (1789-1860)
Reiner Bredemeyer (1929-1995). 1984 "Die Winterreise"
Hans Werner Henze (geb. 1927), "Winterreise"


보리수


성문 앞 우물 곁,
그 곳에 보리수 하나 서 있네,
그 그늘 속에서 꿈꿨네
그리도 많은 달콤한 꿈을.

보리수 껍질에다 새겼네
그리도 많은 사랑의 단어를;
그 단어들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나를 늘 이리로 데려왔다네.

깊은 밤을 지나 오늘
나는 거닐어야 했다네,
그 때 나는 아직 어둠 속에서
내 눈을 감고 있었네.

이윽고 보리수 가지들이 서걱였네,
마치 나를 소리내어 부르듯이:
이리 내게로 오게, 젊은 친구,
여기서 안식을 찾게나!

차가운 바람들이 불어왔네
내 얼굴에 바로 와 부딪혔네;
밀짚모자 머리에서 날아갔지만,
나는 돌아보지 않았네.

지금 나는 많은 시간을 지나
그 곳을 멀리 떠나와 있지만,
늘 나는 귀에 맴도는 소리를 듣는다네:
거기서 안식을 찾을지도 모른다고!


시: 빌헬름 뮐러

곡:
콘라트 크로이처
프란츠 슈베르트, D 911 "겨울나그네" 제 5곡, 1827년작
프리드리히 질허
볼프강 브레데마이어, "겨울나그네", 1984년작
한스 베르너 헨체, "겨울나그네"



by 리트구구 | 2008/04/14 23:20 | 시와 두통 | 트랙백 | 덧글(0)

[티크 Tieck] 신실한 사랑은 오래간다네 Treue Liebe dauert lange

Treue Liebe dauert lange


Treue Liebe dauert lange,
Überlebet manche Stund',
Und kein Zweifel macht sie bange,
Immer bleibt ihr Mut gesund.

Dräuen gleich in dichten Scharen,
Fordern gleich zum Wankelmut
Sturm und Tod, setzt den Gefahren
Lieb' entgegen, treues Blut.

Und wie Nebel stürzt zurücke,
Was den Sinn gefangen hält,
Und dem heitern Frühlingsblicke
Öffnet sich die weite Welt.

Errungen,
Bezwungen
Von Lieb' ist das Glück,
Verschwunden
Die Stunden,
Sie fliehen zurück;
Und selige Lust,
Sie stillet,
Erfüllet
Die trunkene, wonneklopfende Brust;
Sie scheide
Von Leide
Auf immer,
Und nimmer
Entschwinde die liebliche, selige, himmlische Lust!

Text: Ludwig Tieck (1773-1853)

Vertonung: Johannes Brahms (1833-1897), Op.33 "Die schöne Magelone" Nr.15, 1861-69




신실한 사랑은 오래간다네


신실한 사랑은 오래간다네,
많은 시간 동안 살아남는다네
그 어떤 의심도 이 사랑은 불안케 못하고,
언제나 그에게서 용기는 왕성하다네

위협하네 곧 빽빽한 무리를 지어
불러내네 곧 변덕스런 마음을
그런 폭풍과 죽음의 위험에 맞서
허나 사랑은 신실한 피를 내놓는다네

의미를 사로잡아 쥐고 있던 것들
이제 안개처럼 물러나 스러지고
명랑스런 봄날의 시선에게
활원한 세상이 활짝 열리네

행복을
찾아 얻고
길들인 것은 사랑
시간들이
사라졌으나
다시 도망쳐 돌아오네;
그리고 지고의 행복이
시간들을 보듬고,
가득 채우네
도취하여 기쁨에 뛰는 가슴이여;
그는 작별하리
고통에게서
영원토록
또한 유쾌하고 지복한
천상의 즐거움, 다시는 사라져버리지 않으리


시: 루드비히 티크

곡: 요하네스 브람스, 작품번호 33 "아름다운 마겔로네" 제 15곡, 1861-69년작

번역: 나성인

by 리트구구 | 2008/04/14 08:39 | 시와 두통 | 트랙백 | 덧글(0)

노래콩나물 5 - 노래와 관계성

노래콩알 다섯 -



노래와 관계성



지난 시간에 나누었듯이 현상으로서의 음악은 그 자체로서는 신비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비로운 존재와 음악이 연결될 때 나타나는 관계적인 특성입니다.

바꿔 말하면, 인간이 음악을 통해 신비로운 자를 만날 수 있기에,

혹은 신비로운 자가 음악을 통해 자신을 나타낼 수 있기에 그 매개인 음악에서 역시 신비로움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Rudolf Otto가 말한 것처럼 신비로움은

“아주 다른 것ganz Anderes”과의 만남을 통해 경험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만남, 혹은 관계가 없으면 신비로움의 효과 역시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때 신비로운 존재란 인간의 학문과 논리와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존재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무한히 노력하고 무한히 연구하면 밝힐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노력과 지혜를 그 자체로 초월해 있는 그 어떤 존재만이 신비로운 것입니다.

만일 어떤 대상이 과학적 방법론으로 연구되고 분석되고 계량화, 숫자화 될 수 있다면,

그 대상은 이미 신비롭지 않습니다. 그러한 합리적 설명과 함께 신비로웠던 대상은 벌써

그것이 지니고 있던 신화적인 효과를 함께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월계수가 서 있고, 토끼가 절구질을 하고 있었으며 때때로 우리의 소원을 말없이 ‘들어’주기도 하였던 둥근 별이

아폴로 11호의 탐사 이후 그냥 지구 궤도를 뱅뱅거리는 공기 없는 곰보 땅이 되어 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신비로운 존재는 인간에게 경험되는 것이지 지식적으로 알려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즉 신비로운 존재는 학문이나 연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경험과 관계를 통해서만 인간에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음악을 통해 신비로운 존재를 만날 수 있다면 그는 이를 통해 영적인 체험을 하는 것이며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음악의 영성을 도출해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음악의 영성이란 신비로운 자 자신의 신비로움과 음악의 관계성이 인간의 속에서 경험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은 육, 혼, 영을 포괄하는 전인적인 인간과 노래콩알의 관계를 묘사하는 시도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묘사는 합리적인 사고에 비춰볼 때 불충분 것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이는 제가 논하고 있는 대상 자체가 충분히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가 신비로움, 영성, 신에 대해서 완전히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신비로운 것이 왜 신비로운지를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가 말한 신비는 신비가 아니요, 그가 말한 신은 신이 아니겠지요.

그래서 저는 신비로운 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 그 존재가 왜 신비로운지

혹은 그 존재의 이름이 무엇인지 등은 그냥 뛰어넘으려 합니다.

그런 것들은 이미 음악을 넘어선 신앙적, 종교적 영역에 속해 있기에 ‘노래 콩나물’에서 다룰만한 주제는 아니지요.




그래서 저는 이번 시간에는 음악의 관계성에 좀 더 집중해 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음 자체의 속성은 아니지만, 음악이 인간의 활동이기에 가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노래의 이러한 특성은 노래의 감각적 향유라든지, 지식적 분석과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남성이 사랑하는 연인의 창문 아래서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습니다.

또 직업 성악가가 콘서트 홀에서 같은 세레나데를 청중들에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 두 노래는 같은 노래입니다만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첫 번째 노래에는 보다 분명한 관계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음악적으로 볼 때야 당연히 성악가의 노래가 훌륭할 것입니다.

그러나 관계적으로 볼 때 더 의미가 있는 것은 그 평범한 한 남자의 사랑노래입니다.

콘서트 홀에서라면 세레나데에 굳이 답을 줄 이유가 없지만, 지금 내 집 창문 밑에서 노래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다릅니다.

그 노래를 듣는 여인은 긍정이든, 부정이든 그 남자에게 ‘답’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관계는 관찰이나 감상을 넘어서는 적극적 반응을 요구합니다.



이 짤막한 예는 음악, 특히 노래가 단지 감상의 대상이나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진짜 경험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노래를 경험한다는 것은

그것을 감상하거나 연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의 이름은 아마 모두 다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산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킬리만자로의 생태, 생성역사, 지질구조 따위에 대한 연구논문이나 보고서에서

사람들은 이 산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것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킬리만자로의 사진을 볼 수도 있고 산의 높이나 그 생태적 다양성을 보고 놀랄 수는 있지만,

이것은 그 사람이 직접 보고 경험한 킬리만자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게 킬리만자로는 하나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나 영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케냐까지 내려가서 또 버스를 타고 힘든 여정을 거치면서까지

킬리만자로를 눈 앞에서 실제로 본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심지어 그 산에 띵띵 부은 두 발로 올라서 보았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킬리만자로를 온 감각과 온 마음으로 경험하였습니다.

공기의 습도와 냄새, 산의 윤곽과 명암, 그 때의 상쾌한 기분과 다리의 노곤함…… 등을 그는 기억합니다.

킬리만자로는 그에게 있어 삶의 기억의 일부를 차지하는 산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어떠한 ‘존재’를 지식(머리)뿐 아니라 감정, 느낌, 시간, 몸을 포괄하는 전체 삶으로 경험하였을 때

그는 그 ‘존재’를 전체 대 전체로서 진정으로 경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로서 그는 킬리만자로와 모종의 관계를 맺은 셈입니다. 킬리만자로는 이제 그의 킬리만자로가 됩니다.

김춘수 님의 저 유명한 시 “꽃”이 말하는 바 역시, 이런 관계의 경험입니다.

관계 없이는 어떤 존재를 보통명사를 넘어서는 보다 특별한 이름으로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동물들에게 이름을 주었던 최초의 인간 아담은 지상의

모든 동물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었던 인간, 즉 신적인 관계능력을 아직 잃지 않았던 그런 인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당연히 인간관계에서도 적용됩니다. 모든 사람의 이름은 특별합니다.

왜냐하면 아무개 라는 이름은 그 출생과 더불어 적어도 그 부모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아무개라는 이름은 처음부터 관계 속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이 관계가 그 이름을 특별하게 만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싸이월드 회원 검색창에 뜬 수많은 홍길동 가운데 내가 아는 그 홍길동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그와 내가 공유하고 있는 관계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진짜 경험’ 혹은 ‘관계의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우선 이 경험이 총체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학문이나 정보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모든 학문, 모든 텍스트는 실제 경험을 언어의 형태로 가공한 것인데,

가공 과정에서 원래 대상이 가지고 있었던 다양한 모습은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왜냐하면 학문을 담고 있는 매체인 텍스트는 정보적 사실 외의 다른 ‘부차적인’ 것들을 소실시키기 때문입니다.

흔히 드는 예로 “너 아직도 안 일어났니?”라는 텍스트에서 독자는 그 뜻을 읽어낼 수는 있지만

그 거기에 실린 감정은 그저 어렴풋이 상상할 수만 있을 뿐입니다.

누군가가 글로 자신의 연인을 힘껏 묘사한다 해도 읽는 사람은 그녀가 김혜수를 닮았는지,

아니면 송혜교를 좀 더 닮았는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이지요.

텍스트는 실제의 인상을 상상해 볼 수는 있게 하지만 직접적인 의미에서 어떤 것을 ‘그려낼’ 수는 없습니다.



또한 진짜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이 경험이 텍스트에 의해 표현된 관계의 진술을 이해하는 선경험이 되기 때문입니다.

텍스트라는 언어적 기호 자체만으로는 관계나 경험의 실제를 거의 나타낼 수 없습니다.

삶이 없다면, 경험이 없다면 언어와 텍스트가 지시하는 어떤 상황적, 관계적 진술은 거의 이해될 수 없습니다.

내 친구 A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B에게 설명한다고 해도,

B에게 그만큼 소중한 다른 친구 C가 없다면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나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당연한 이야기지만 텍스트를 통한 간접경험은 진짜 경험과 관계의 경험을 거의 대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대체불가능성은 영상과 같은 시각적 매체에도 거의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시각매체 역시 문자매체인 텍스트보다는 그 소실 정도가 덜 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진짜 경험을 완전히 재현하지는 못합니다.

애인의 사진에서 애인의 모습을 볼 수는 있지만 애인의 실제를 다 느낄 수는 없지요.

마찬가지로 스크린에 갇힌 채 재생되는 영화와, 무대에 갇힌 채 공연되는 연극은

그것이 아무리 나름의 진실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나의 시시콜콜한 일상사만큼 더 진짜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맞닥뜨렸던 진짜 경험에서는 정보 이외에 다른 것들을 소실시키는 그런 가공 작용

(이론화, 개념화, 변인 통제 등등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경험은 간접 경험 혹은 가상 경험과는 달리 아직 총체적인 실제를 비교적 온전히 담고 있습니다.

또한 이 경험은 단지 읽기, 보기, 사고하기와 같은 지식적인 활동만이 아니라 몸의 전부를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하나의 활동입니다.

더욱이 이것이 일회적인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지속성을 띄게 된다면

이제 어떤 ‘대상’은 개인적인 관계 내부에 들어와 특정한 ‘의미’를 가지는 데까지 이릅니다.

이제 그것은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러한 경험은 어떤 존재에 대한 학문적 객관화 및 일반화

– 즉 정보의 조작적 선택 - 를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객관적인 대상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인간적인’ 이유들 때문에 통제변인들은 더 이상 제어되지 못합니다.

대상이 자꾸 한 사람의 삶의 기억들과 연결됩니다. 그것들은 감정을 건드리고 마음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이러한 관계의 경험은 결국 경험자 스스로에게도 총체적 반응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처음에 언급한 한 남자의 세레나데는 이러한 총체적 반응이 나타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냥 수동적으로 노래를 듣거나, 그 노래의 화성을 분석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 발로 걸어서 사랑하는 여인의 창문 아래까지 왔고 자기 목소리를 이용하여 노래했습니다.

그의 노래는 자신의 전부를 이용하여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는 음악적 몸짓입니다.

따라서 그의 노래는 그것이 노래이어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이 노래를 그녀 앞에서 부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물려준 시계가 굳이 시계이거나 값이 비싸서가 아니라

오직 아버지라는 관계와 연결되고 있기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혹 혼자 노래하는 사람이 있다면 – 그냥 라디오에서 나오는 것을 따라 흥얼거리는 것이 아니라면 -

그는 그 자신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말을 하는 것보다는 시를 읊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들고,

노래를 하는 데는 그보다도 더 많은 시간과 집중 또한 필요합니다.

노래 소리는 보통 말소리나 외마디 비명 따위 와도 완전히 다른 새로운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필멸의 인간에게 있어 시간은 곧 생명이기에, 노래는 말보다 더 많은 생명을 쏟는 일이 됩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노래를 한다는 것 – 다시 말해 노래로 마음을 전한다는 것은

곧 그가 누군가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관계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음악. 특별히 노래의 관계성은 바로 이 점에서 신비로움의 경험의 전제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 그가 믿는 신비로운 존재에게 드리는 찬양.

그 찬양은 그것이 훌륭한 노래여서가 아니라 단지 그가 믿는 신에게 드려지는 것이기에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거짓으로나 즐거움을 위해서나 거리를 두고서가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생명을 다해 찬양하는 것입니다.




* 다음 편에 계속.

by 리트구구 | 2008/04/13 19:10 | 노래콩나물 | 트랙백 | 덧글(1)

[소년의 마술피리 Des Knaben Wunderhorn] 기상신호 Rewelge

Rewelge


"Des Morgens zwischen drein und vieren,
Da müssen wir Soldaten marschieren
Das Gäßlein auf und ab;
Tralali, Tralalei, Tralala,
Mein Schätzel sieht herab."

"Ach Bruder jetzt bin ich geschossen,
Die Kugel hat mich schwer getroffen,
Trag mich in mein Quartier,
Tralali, Tralalei, Tralala,
Es ist nicht weit von hier."


"Ach Bruder, ich kann dich nicht tragen,
Die Feinde haben uns geschlagen,
Helf dir der liebe Gott;
Tralali, Tralalei, Tralala,
Ich muß marschieren bis in Tod."

"Ach, Brüder! ihr geht ja an mir vorüber,
Als wär's mit mir vorbei,
Ihr Lumpenfeind seid da;
Tralali, Tralalei, Tralala,
Ihr tretet mir zu nah.

Ich muß wohl meine Trommel rühren,
Sonst werde ich mich ganz verlieren;
Die Brüder dick gesät,
Tralali, Tralalei, Tralala,
Sie liegen wie gemäht."

Er schlägt die Trommel auf und nieder, rührt
Er wecket seine stillen Brüder,
Sie schlagen ihren Feind,
Tralali, Tralalei, Tralala,
Ein Schrecken schlägt den Feind.

Er schlägt die Trommel auf und nieder,
Da sind sie vor dem Nachtquartier schon wieder,
Ins Gäßlein hell hinaus,
Tralali, Tralalei, Tralala,
Sie ziehn vor Schätzleins Haus.

Des Morgen stehen da die Gebeine
In Reih und Glied sie stehn wie Leichensteine,
Die Trommel steht voran,
Tralali, Tralalei, Tralala,
Daß sie ihn sehen kann.


Text: Des Knaben Wunderhorn (1806),
gesammelt von Achim von Arnim (1781-1831) und Clemens Brentano (1778-1842)

Vertonung: Gustav Mahler (1860-1911), Des Knaben Wunderhorn, 1905



기상신호


새벽 세 시 그리고 네 시 사이
그 때 우리 군인들은 행진해야 한다네
좁다란 골목길 이리저리;
트랄랄리, 트랄랄라이, 트랄랄라,
내 연인이 창에서 내려다보네

"아, 전우여, 지금 나 총 맞았소,
총알이 나를 콱 맞혀버렸지,
날 막사 안으로 옮겨다 주오,
트랄랄리, 트랄랄라이, 트랄랄라,
여기서 그리 멀지는 않다오."

"아, 전우여, 난 너를 업어갈 수 없다오,
적들이 우리들을 때려눕혔지,
사랑의 하나님이 너를 도우시기를;
트랄랄리, 트랄랄라이, 트랄랄라,
나는 죽음 속까지 행진해야 한다오."

"아, 너희들, 내 곁을 그래 다 지나가 버리는구나,
내가 이미 끝장났다는 듯이,
너희 쌍놈의 원쑤들이 저기들 있고;
트랄랄리, 트랄랄라이, 트랄랄라,
너희들 이제 내게 가까이 오는구나.

나는 내 북이나 두드려야 하는구나,
안 그러면 나 스스로를 아주 잃어버리겠어;
전우들은 층층 널부러졌네,
트랄랄리, 트랄랄라이, 트랄랄라,
베어낸 건초더미 마냥 말이야."

그는 쳤네, 위로 아래로 북을, 두드렸네
그는 그의 소리없는 전우들을 깨웠네
그들은 적들을 때려눕혔네,
트랄랄리, 트랄랄라이, 트랄랄라,
공포가 적들을 엄습했네.

그는 쳤네, 위로 아래로 북을,
그 때 그들은 벌써 다시 밤의 병영 앞에 있네,
무리지어 좁다란 골목 안팎 드나들면서,
트랄랄리, 트랄랄라이, 트랄랄라,
그들은 이제 연인의 집 앞으로 움직이네.

아침 그 곳에는 해골들이 서 있네
항오를 지어 묘석들처럼 서 있네
그 북은 대열 맨 앞에 서 있네,
트랄랄리, 트랄랄라이, 트랄랄라,
그의 연인이 그를 볼 수 있도록.


시: 소년의 마술피리
수집: 아힘 폰 아르님, 클레멘스 브렌타노

곡: 구스타프 말러, 소년의 마술피리, 1905년작

번역: 나성인


by 리트구구 | 2008/04/10 23:02 | 시와 두통 | 트랙백 | 핑백(2)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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